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랍의 봄 (문단 편집) === [include(틀:국기, 국명=요르단, 출력=, 크기=40)] [[요르단]]※☆ === [[2011년]] 1월 14일 시위 첫 발생. 리파이 내각이 개편되었다. 1월 28일 금요기도 이후 수천명의 시위대가 고물가와 실업 문제 등 경제난에 대한 불만으로 시위를 벌였다. 정권 퇴진 구호는 이 상황에선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그러자 재빠르게 [[압둘라 2세]] 국왕은 2월 1일 사미르 '''리파이 총리 내각을 해산'''하고 군 장성 출신인 마루프 알 바히트(바키트) 전 총리를 재기용했으며 이슬람 지도자를 만나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행보를 보였다. 또한 쌀과 설탕, 연료 등의 주요 생필품 가격을 억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무슬림 형제단 등의 야권 정파가 입헌군주인 압둘라 2세의 축출까지는 목표로 삼고 있지 않기에 이 정도로 마무리 될 것 같다는 예상이 나왔다. 2월 9일 마루프 알 바히트 총리는 좌파 노조주의자와 무슬림 형제단의 전 회원, 여권 운동가 등의 야권 인사를 등용한 통합 내각을 구성함으로서 야권의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야당격인 무슬림 형제단은 직접적인 내각 참여는 거부했지만 개혁을 지켜보겠다고 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2월 18일 이런 조처에도 수도 암만에서 2천여 명의 왕의 권력 제한을 외치는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경찰과의 충돌로 부상자가 나왔다. 20일 압둘라 2세 국왕은 조속하고도 실효성 있는 개혁을 약속하면서 보수적인 관료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25일 금요기도 후 주민들과 이슬람 행동전선을 비롯한 20개 야당의 야권 지도자, 노동조합원들이 모여서 6천 ~ 1만명 가량이 모여 6주 연속 금요일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하지만 약속된 개혁이 더딘 모습이 보이자 계속해서 불만이 제기되었으며, 몇달 후 국왕 압둘라 2세는 정당들의 불만에 바히트 총리와 바히트 내각을 해산시켰다. 국왕은 다시 아운 카스완네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총리는 다시 파예즈 타라우네흐로 교체되었으며, 2012년 10월 10일 타라우네흐의 뒤를 이은 압둘라 엔수르 총리까지 요르단의 부패 척결, 개혁행보는 현재 진행형이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555213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